회삿돈으로 낸 과징금, 이제 이사의 지갑으로 돌아온다: 한화투자증권 ESG 리포트 「회삿돈으로 낸 수백억 과징금, 이제 이사의 책임」 리뷰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ESG 담당 애널리스트 엄수진(sujineom@hanwha.com)이 2026년 10월 13일 발표한 보고서다. 제목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그동안 기업이 담합이나 법령 위반으로 받은 과징금은 손익계산서의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되고 끝나는 것이 관행이었다.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고, 그 손실은 결국 주주가치 훼손으로 전가되었다. 이 보고서는 그 비용의 최종 귀속처가 이사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법원 판결을 통해 읽어낸다. 재무설계와 리스크 관리의 언어로 옮기면, 기업 리스크가 임원 개인의 재무 리스크로 전이되는 경로가 판례로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먼저 주주대표소송의 구조를 정리한다. 비상장회사는 발행주식총수의 1% 이상, 상장회사는 6개월 전부터 계속하여 0.0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원고 적격을 갖는다. 주주는 곧바로 법원에 갈 수 없고, 먼저 회사에 서면으로 이사의 책임 추궁 소 제기를 청구해야 하며, 회사가 30일이 지나도 소를 제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직접 제소할 수 있다. 본안은 상법 제399조에 따라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입혔는지를 다툰다. 피고에는 퇴임 이사도 포함된다. 책임 원인 행위 당시 이사였다면 퇴임 후에도 노출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은, 임원 개인의 리스크 기간이 재임 기간보다 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법원 허가 없이는 소 취하·청구 포기·화해가 불가능하고,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주주 개인이 아니라 회사에 귀속된다.
이 마지막 구조가 제도 활용을 가로막아 왔다. 보고서에 인용된 경제개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25년 9월 말까지 약 28년간 국내 주주대표소송 판결은 총 294건, 그중 상장회사 사건은 63건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그 원인을 네 가지로 진단한다. 첫째, 원고 주주가 얻는 보상은 지분율만큼의 간접 이익에 그치는 반면 소송 비용과 패소 시 손실은 고스란히 원고가 부담한다. 여기에 상법 제400조제2항에 따라 정관으로 이사 책임을 최근 1년 보수의 6배(사외이사는 3배) 초과분에 대해 감면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 회수액을 낮춘다. 둘째, 대형 상장사에서 0.01% 지분을 개인이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셋째, 이사회 의사록·내부 보고서 등 입증 자료가 회사 내부에 편재되어 있어 입증 부족으로 기각되는 사례가 허다했다. 넷째, 법원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재무플랜의 관점에서 보면, 원고 입장의 기대수익 대비 비용 구조가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 균형을 흔든 것이 보고서가 중심에 놓은 K사 판결이다. 2026년 8월 20일 지방법원은 담합으로 과징금과 벌금을 부과받은 K사의 전직 이사들에게 회사에 대한 배상을 명했다. 원고는 소 제기일 6개월 전부터 발행주식총수의 1만분의 1 이상을 보유한 주주 A 한 명이었다. 2024년 10월 29일 소 제기를 청구했고, 회사가 30일 내에 움직이지 않자 2024년 12월 2일 직접 제소했다. 사건은 세 갈래의 담합이었다. 영업팀장들의 제품 유통·직판가격 담합(과징금 약 176억원, 벌금 5천만원), 구매팀 직원들의 원재료 구매 기준가격 담합(과징금 약 496억원, 이후 고등법원 판결로 394억원 확정), 국가기관 입찰 담합(과징금 약 318억원, 벌금 1억원)이다. 원고는 이 가운데 제1·제3담합으로 회사가 납부한 과징금과 벌금 합계 약 496억원을 손해로 청구했다.
피고 측은 담합을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고 사전에 알지도 못했으며, 합리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추었음에도 실무자의 개인적 일탈로 발생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표이사는 회사 영업에 관한 모든 행위의 권한을 가진 만큼 모든 직원의 직무집행을 감시할 의무를 지며,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영역에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작동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면 감시의무 해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결론은 피고 B 약 149억원, 피고 C·D는 B와 연대하여 약 99억원, 피고 E는 B·C·D와 연대하여 약 50억원이다. "몰랐다"는 항변이 더 이상 면책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 이 판결의 실질적 의미다.
보고서는 이 흐름이 우연이 아님을 D사 판례로 뒷받침한다. 건설사 D사의 정부·공공기관 발주 공사 입찰 담합(과징금 약 97억원·25억원·160억원 등)에 대해, 합산 지분 1만분의 1을 넘긴 주주 13인이 전직 이사 10인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했다. 고등법원은 2021년 9월 3일 피고별로 4,650만원에서 5억1천만원까지의 책임을 인정했고, 대법원은 2022년 5월 12일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은 고도로 분업화된 대규모 회사라도 모든 이사는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에 관해 법규 준수를 관리하고 위반 시 즉시 보고·시정할 수 있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작동시키는 방식으로 감시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2년 D사가 원칙을 세웠고, 2026년 K사는 그 원칙 위에서 배상 규모를 백억원대로 끌어올렸다. 리스크 관리자의 눈에는 이것이 손해 심도(severity)의 상방 이동으로 읽힌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선행 과제는 세 가지다. 자금력·인력·정보력에서 앞서는 기관투자자가 대표소송을 주주권 행사 수단으로 솔선하여 활용할 것, 민사소송법에 포괄적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할 것, 그리고 임원배상책임보험을 활성화할 것이다. 디스커버리와 관련해서는 올해 1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전문가 사실조사, 자료 보전 명령, 당사자 신문을 골자로 한 한국형 디스커버리(K-Discovery)가 도입되었다는 점을 짚는다. 대표소송 기각 사유의 가장 큰 비중이 입증 부족이었던 만큼, 이 제도가 민사소송 전반으로 확대되면 원고의 입증 비용 곡선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보험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임원배상책임보험(D&O)에 관한 진단이다. 보고서는 유책 이사가 수십억, 수백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더라도 개인 재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지적하며, 회사가 실제로 손해를 보전받기 위해서라도 상장회사는 D&O에 가입해야 한다고 본다.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국내 상장사의 가입률은 2010년 21%에서 2023년 75%까지 올랐지만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은 2023년 기준 1~2%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힌다. 가입은 늘었으나 실제 보장 기능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그 원인을 두 가지로 든다. 하나는 피해자인 회사가 전·현직 임원과의 우호적 관계 때문에 책임 추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풍토이고, 다른 하나는 좁은 보장 범위, 과다한 면책사유, 그리고 청구기준(claims-made) 보험 특유의 통지조항·방어비용·위법행위 면책 등에서 해석이 불분명하거나 불합리한 약관 조항이다.
여기서 재무설계적 함의를 덧붙이자면, 1~2%라는 지급률은 그동안 D&O가 사실상 "사고가 나지 않는 보험"으로 가격이 매겨져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K사 판결이 보여준 149억원이라는 숫자는 국내 상당수 기업이 설정한 보상한도를 넘어서는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대표소송이 활성화되면 청구 빈도와 심도가 동시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문서 속에만 존재하던 약관 쟁점들, 즉 감시의무 해태라는 과실 책임이 어디까지 보장되는지, 과징금 자체와 그로 인한 회사 손해 배상책임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대표소송이 피보험자 간 소송 면책의 예외로 적절히 처리되는지, 통지 시점이 언제로 인정되는지가 실제 분쟁의 장으로 나오게 된다. 이사 개인 입장에서도 퇴임 후까지 이어지는 노출 기간을 고려하면 보고기간 연장(ERP)과 퇴임 임원 담보 여부는 더 이상 부수 조건이 아니다. 보고서가 감독당국에 주요 선진국 제도를 참고한 D&O 표준약관의 제정·배포를 주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구 건수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합리적인 보험금 지급이 보편화되어야 제도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가치는 법리 해설에 머물지 않고 그 법리가 자본시장과 보험시장에 어떤 비용 구조의 변화를 가져올지를 연결해 보여준다는 데 있다. 과징금이 회사의 비용으로 끝나던 시대에는 내부통제가 컴플라이언스 부서의 업무였다. 과징금이 이사 개인의 배상책임으로 이어지는 시대에는 내부통제가 이사 개인의 재무 방어선이 된다.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작동 기록, 충분한 보상한도와 정교한 약관을 갖춘 D&O, 그리고 이사회의 감시 기능 문서화. 이 세 가지가 이제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이자 임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산 보전 문제가 되었다. 기업의 리스크 담당자, 이사회 구성원, 그리고 D&O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실무자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보고서다.
출처: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엄수진, 「ESG: 회삿돈으로 낸 수백억 과징금, 이제 이사의 책임」